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의 2006년 월드컵은 끝이 났다. 4800만 대한민국을 흥분 속에서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그 가슴 설레던 이벤트는 끝이 났다. 월드컵에 누구보다 흥분했던 대한민국의 일남일녀로써, ‘아젠다 세팅’의 주제에 대한 예를 월드컵에서 밖에 찾지 못하는 상상력의 빈곤함을 탓하며……월드컵……한번 꽈서 보자. 지난 2002년 우리 나라는 두 개의 커다란 ‘사건’을 겪었다. 하나는 모두가 짐작하는 6월의 ‘월드컵’이고, 다른 하나는 12월 즈음에 일어났던 미군 장갑차 사고로 희생당한 여중생들을 위한 ‘촛불 집회’였다. 두 사건 모두가 성숙한 대한민국 시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알고 있는가?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이 희생된 날은 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 13일이었다는 것을… 단지 미디어에 의해 주목 받게 된 것이 12월 즈음이었다는…그래서 우리의 인식 속에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조금만 냉정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왜 월드컵에 열광하는가? 6월에 죽은 여중생에 대한 촛불 집회는 왜 12월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을까? 월드컵 기간 동안 TV, 라디오, 신문 등의 매체에서는 그들의 시간과 공간의 대부분을 월드컵 이야기를 하는데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의 광고 역시 월드컵 주제 일색이었다. 한마디로 월드컵 기간 동안 우리의 눈과 귀는 월드컵 이외의 것들은 볼 수 없도록 만들어진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꽈보면 월드컵만 생각하도록 조작된 현실, 월드컵 이외의 것들에 대해 사고하지 못하는 현실. 그것이 월드컵 기간의 대한민국이다.
아젠다 세팅, 또는 의제 설정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매스미디어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회의 이슈에 대해 공중의 ‘What to think about’을 정하는 것이다. 공중은 미디어와의 접촉을 통해 사회와 교감한다. 그러나 미디어가 자의적으로 사회적 이슈의 중요도를 정하여 그 이슈들만 보여주기 때문에, 미디어에 채택되지 않은 이슈들은 공중에게 보여지지 않는다. 미디어가 자신들에 의해 비춰진 이슈에 대해서만 생각하도록 ‘생각의 방향’을 정하기 때문에 정작 공중에게 중요한 문제,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둔감해 지는 것이다. 즉, 우리가 보고 듣는 이슈는 사회적 이슈가 아닌, 미디어에 의해 정해진 미디어적 이슈인 것이다.
최근 월드컵이 끝나고, 그 동안 월드컵에 가려져 있던 문제들이 하나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물론 그 문제들이 월드컵 때문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월드컵의 감동과 흥분이 다른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에서 눈을 돌렸기 때문이라면 그 감동과 흥분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월드컵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고, 월드컵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는 산재해 있다. 4800만 모두가 붉은 악마일순 없고, TV에서 하루 종일 월드컵을 볼 이유도 없다. 쫌 더 꽈보면, 월드컵 기간의 우리 나라는 전체주의 국가 같다. ‘대안’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로 1~2달 정도 세팅 되어있는 나라. 이런 나도 욕 먹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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