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개봉하여 예상 외의 커다란 흥행을 거둔 영화가 있었다. 살인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주제를 연애와 접목시켜 세간의 이목을 끈 이 영화는 그 소재의 참신함과 배우들의 맛깔스런 연기로 당당히 흥행작의 반열에 올라섰다. 살인을 저지른 전과가 있는 여자 주인공은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서 「죄와 벌」을 모르고, 미술학도임을 자처하면서 몬드리안과 칸딘스키가 누구인지 알 지 못한다. 이처럼 너무 어설퍼서 다소 엽기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거짓말은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바로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이었다. 물론 그녀의 증세를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병이 없는데도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혹은 의사의 진찰을 받을 목적으로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심할 경우 자해까지 일삼는 정신 질환을 말한다. 이 병명은 1720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뮌하우젠이라는 사람에게서 유래되었다. 그는 평소 거짓말하기를 좋아했으며 1793년에는 그의 거짓 이야기를 각색한 책 「뮌하우젠 남작의 모험」이 나오기까지 했다. 1951년에 미국의 정신과의사 리처드 아셔가 뮌하우젠 남작의 이름을 붙인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이래 현재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논문만도 1천여 편에 달한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일부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자신의 자녀를 대리 환자로 내세워 병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녀의 병력을 위조하거나 약물로 해를 입히는 등 질병을 가장하기 위해 위험한 행위조차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데, 실제로 미국의 캐시 부시라는 여성은 남의 동정을 사기 위하여 자신의 딸을 200번이나 병원에 입원시키고 40차례나 수술을 받게 하였다. 전문가에 따르면 뮌하우젠 증후군은 보호 본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어릴 때 과잉보호로 홀로서기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 위기 상황에서 도피 수단으로 의료진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또한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에게 꾀병을 부리지 말라고 다그치기보다는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이 증후군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 속의 피노키오는 거짓말만 하면 코가 길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피노키오의 거짓말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고, 피노키오는 자신의 거짓말을 고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뮌하우젠 증후군은 상황이 조금 난처하다. 아프다고 병원에 오는 사람을 일일이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피노키오의 귀여운 거짓말이 그립게 느껴지기도 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코를 동화 속에서처럼 길어지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을 키워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단순한 장난이라고 하기엔 조금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