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머리가 그 머리다’ 라는 말이 있다. 보통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기서 거기다 라는 뜻이다. 광고를 공부하는 내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지양해야 하는 말이지만, 가끔 아이디어의 한계에 부딪치다 보면 저 말이 저절로 이해가 가기도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낸 것들은 이미 비슷한 것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나만의 빅 아이디어라고 좋아했는데 바로 옆의 친구가 똑같은 아이디어를 먼저 내놓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생각과 시각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언제든 있기 마련이다.
기자들도 다르지 않은가 보다. 요즘 포탈 뉴스란 등에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면 몇몇 기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일반적인 보도인 경우, 메이저 신문사들이나 인터넷 뉴스나 보도하는 내용이 다 거기에서 거기다. 물론 긴급하게 사실만을 보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라 할 수 있지만, 종이신문에서 느껴지던 나름의 개성은 어쩌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획일적이고 개성 없는 저널리즘, 그것을 팩 저널리즘(pack journalism) 또는 패거리 저널리즘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기사들은 취재 방법이나 시각에 독창성이 없고, 보도에 개성이 없거나 단조롭다. 기자의 책임일 수도 있지만 외부적인 원인의 영향도 크다. 어떤 기관이나 정당을 지속적으로 출입하는 기자들은 정보원과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기자들의 시각과 사고가 정보원을 중심으로 매우 비슷해져 간다. 이런 잘못된 저널리즘에서는 심층적인 보도가 어려워지고, 시야가 협소해져 양 방향의 의견 모두를 싣지 못하고 편파적인 보도를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또한 전반적인 상황 이해에 어려움이 있어 단순 기술이나, 후보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 만으로 기사가 한정될 우려도 있다. 기자는 관료적 지식인이다. 관료적 세계 속에 존재하며 배경의 영향을 받는다. 출입처 기자실 내 같은 집단의 상호작용에 따라 한데 묶여 다니며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개성 없는 기사가 양산되고 또 양산되기를 반복한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되듯이, 모든 언론과 모든 언론인이 패거리 저널리즘의 노예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저널리즘의 양상을 비판하는 의견도 속속 등장하고 있고, 언론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언론인 각자의 자성을 촉구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언론인들은 특히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바로 자신의 펜 끝에서 나온 그 ‘기사’가, 다수의 대중에게는 곧 어떤 진실을 판단하는 강력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사로 여론이 조정되고, 그들의 기사로 사람들은 정보를 얻고, 그들의 기사를 통해 사람들은 사실을 판단하기도 한다. 언론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선 사람들이다.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부패’ 혹은 ‘태만’의 꼬리표를 달고 나온 그 어떤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꿈 많았을 어린 시절을 상상하곤 한다. 두 발로 뛰며 세상의 진실을 보도하는, 그런 꿈을 꾸는 소년 소녀들이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또 생각한다.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듬뿍 지닌 그들을 볼 때마다 함께 가슴 뛰곤 했던 내 어릴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