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정리함

아이들에게 어른 되기를 허하라

서나노야 2006. 10. 3. 06:44
아이들에게 어른 되기를 허하라
  
<전문가 기고 - 임병구의 교단통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몇몇 역사속의 인물들은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아이 시절부터, 그러니까 어른이 되기 이전부터 이미 어른이었다. 정수일 교수가 ‘한국의 첫 세계인’이라고 칭송한 신라시대 혜초 스님은 16살에 당나라도 건너가 세계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같은 시대 최치원도 12세에 유학을 떠났다니 한국 해외유학 바람을 일으킨 원조 격이다. 그가 당나라 과거에 급제해 사회적으로 어른 대접을 받은 게 18세,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라서 수긍할 뿐이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겉늙어도 한참 겉늙은 분이다.


16세에 왕위에 오른 광개토대왕은 10년 동안 전쟁터를 누볐다. 아동보호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시기에 그는 활을 쏘며 영토를 넓혔다. 그에게는 전쟁터가 학교였고 살생은 교육과정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문명과 교육 제도는 그렇게 일찍 어른이 되는 시대를 미개라고 정의한다. 아이를 아이답게 보호해 주는 기간이 길수록, 늦게 어른이 될 수록 그 사회는 문명화된 사회로 간주된다.


그래서인지 월드컵 4강, 올림픽 10강, 세계 10위 경제국이라는 지표에 맞춰 우리는 아이 속에 있는 어른을 ‘문명스럽게’ 유폐시킨다. 어른들은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아이를 가두고 아이들은 자기 속에 있는 어른을 부정한다. 어른들은 짐짓 100% 어른인 체 하고 아이들은  1%도 어른이 섞이지 않은 척 내숭 떤다. 그러다가 어둠이 깔리면 어른은 룸 혹은 방에서 아이처럼 놀고 아이들 역시 으슥한 뒷골목을 찾아 어른 흉내 내느라 골몰한다.


낮에는 학교에서 아이로 살고 밤에는 사회에 나가 어른처럼 놀면서 이 시대의 아이들은 커간다. 하지만 그건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느는 것일 뿐 성숙에 대한 책임은 그 자신에게도 없고, 학교는 잘 모르며, 사회는 제 알 바 아니라고 여긴다. 너무 조숙한 아이들은 ‘에미 애비도 모른다’는 타박의 대상이 되며, 겉만 늙은 ‘마마보이’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모성의 한계를 시험한다.


학교 앞까지 승용차로 모시고 시간별로 아이의 동선을 점검하는 부모들로부터 독립해 어른이 되는 길은 종종 일탈로 간주된다. 자신은 물론 앞 세대를 부정하는 훈련을 통해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할 아이들은 일탈과 성숙을 구분하지 못한다. 어른이 될수록 삶이 고달팠던 부모 세대는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안쓰럽게 보듬어 안고 차일피일 놓아주어야 할 시점을 미루다가 늙은 아이와 함께 늙어 간다.


우리 시대의 어른은 자기 속의 아이를 감추느라 일상의 행복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데 아이들은 그런 어른이 되지 못해 불행하다고 여긴다. 어른과 아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져 어른은 책임감에 늙어가고 아이는 철이 들지 못해 시들어간다. 서울대 학생회장이었던 황 뭐라는 친구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된 경륜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학생답지 않았기에 학생회장이 되었고 결국 학생회장답지 못해 중도 사퇴했다.


그러나 요새 중등학교에서 진행되는 학생회장 선거는 누가누가 더 어린가를 경합한다. 아이들이 내건 공약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문명화되어 14세 이상 아이들의 수준을 유아기 이전으로 묶어 놓고 있다고 의심하게 한다. ‘매점에서 하드를 팔게 하겠다’는 약속이 공약이 되고 ‘급식에 햄이 자주 나오게 하겠다’며 기염을 토한다. 유권자들은 ‘도서실에 책을 늘리겠다’는 따분한 어른투의 공약을 외면하고 ‘입의 문제’에 일차원적으로 반응한다.


문명화된 세상의 아이들은 생사를 걸고 들판을 누비지 않는 대신, 자신들의 현재에 순응해 간다. ‘화장실에 휴지를 걸겠다’는 최소한의 요구조차 총학생회장의 공약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어려서 어린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맞춰 어른 되기를 유보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욕망하는 수준에서 자신의 성장을 조절하고 있다가 어느 날 어른보다 더 어른이 되어 후세들을 길들이려 들지도 모른다. 화장지도 요구하기 전까지는 절대 주지 마라’, ‘우리가 그렇게 거칠게 훈련받았으므로 인생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며 후세들을 닦아 세울지도 모른다.



* 필자 임병구 님은 인천여자공고에서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인천교육개혁연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편집팀(enews@incheo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