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애니콜이란 이름을 만들었나요?”
며칠 전 삼성전자 국내영업사업부 애니콜 영업팀 조진호 상무를 만났습니다. 조 상무에게 평소에 꼭 알고 싶었던 것을 물었습니다. ‘애니콜이란 이름을 지은 사람이 누군가’입니다.
그는 웃으면서 “전에 이재용 상무가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뭐라고 대답했느냐 하면 ‘무덤에 갈 때까지 말할 수 없다’입니다.”
이재용 상무에게도 안 알려 주었으니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내가 애니콜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한 50명쯤 있습니다. 제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을 꼭 집어서 누구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공동묘지 같은 곳으로 조 상무를 끌고 가서 땅을 파면서 물어 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조 상무는 애니콜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1988년 경력 사원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합니다. 그해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휴대폰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88년 나온 SH-100은 말이 휴대폰이지 그 모양이나 무게는 거의 벽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품을 써 봤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출시는 했지만 외국 휴대폰에 밀려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5년간 삼성전자는 5개 제품을 더 내놨습니다. 그러나 그 제품 역시 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휴대전화는 모토로라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6형제는 말하자면 사생아였습니다. 모토로라 에릭슨 등 해외의 쟁쟁한 정보통신업체들과 제대로 싸워 보지 못하고 생을 마쳤습니다. 이 와중인 91년 1월 당시 평사원이었던 조 상무가 휴대전화 사업부쪽으로 적을 옮겼습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첫 삼성전자 휴대전화는 93년 나왔습니다. 그해 11월 삼성전자는 SH-700을 내 놓았습니다. SH-700은 시장에서 살아남은 첫 국산 휴대폰입니다. 인큐베이터에서 죽은 형들과 달리 외산제품과 경쟁해 시장 점유율 10%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10월 SH-700의 동생 SH-770이 태어납니다. 이 동생이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를 살려 놓았습니다. 그 이름은 아마 한국 산업사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SH-770은 애니콜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첫 휴대전화입니다. SH-770은 1995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국내 시장 1위 자리를 차지합니다.
애니콜이란 이름이 붙은 과정은 대충 알려져 있습니다. 93년 삼성전자는 새로운 휴대폰 브랜드를 찾기 시작합니다. 아마 SH-700이 성공한 다음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93년 ‘모토로라를 국내시장에서 퇴출시킨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구호로 내걸고 실행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조 상무는 실무 과장으로 팀에 들어갑니다.
그 팀은 “삼성전자란 브랜드로는 모토로라를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새 브랜드를 만들자는 결론이 나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이야기죠.
93년 새로운 브랜드를 공모해 5000여개 제안을 받았지만 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광고기획사에도 부탁해 봤지만 그것도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국내 영업 사업부장이었던 오정환 르노삼성차 고문이 제안한 '애니텔(anytell)'을 일단 새 브랜드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애니텔은 상표로 사용할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당시 팀은 머리를 쥐어 짜고 토론을 거쳐 애니콜을 새 브랜드로 정했습니다. 조 상무는 “사실 여러명이 자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딱 지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애니콜을 처음 거론한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이 혼자 했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삼성전자는 영어권 국가에선 애니콜이란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애니콜(anycall)에 any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call이 안된다는 뜻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죠. 그래서 애니콜이란 브랜드는 한국과 중국 정도에서만 사용합니다. 아마 영어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 붙인 이름은 아니겠죠.
전세계적으로 쓰진 않지만 통하는 곳에선 화끈하게 통합니다. 혹시 ‘애미콜(amycall)’이란 브랜드를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중국에서 팔리는 애니콜의 짝퉁입니다. 애미콜 사진을 보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애니콜의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심지어 좀 웃기기조차했습니다.
SK텔레콤 담당자에게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왜 삼성전자 휴대전화가 다른 업체에서 만든 것보다 비싼데 더 많이 팔리죠? 그냥 "애니콜이니까"랍니다.
93년 당시 생긴 팀원들은 매일 산을 탔습니다.
‘한국 지형에 강하다’ 이 광고 문구를 기억하십니까? 애니콜 초기 광고입니다. 낮은 산이 여기저기 깔려 있는 한국 지형에선 외산 제품보다 삼성전자에서 만든 애니콜이 더 잘 터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조 상무는 당시 애니콜 휴대폰과 전단지를 등산가방에 담아 산에서 산으로 달렸습니다. 이 프로젝트 이름도 재미있습니다. 이른바 천왕봉 프로젝트입니다. 그런데 처음엔 노고단 프로젝트였다고 합니다.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노고단으로 알고 노고단 프로젝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나중에 천왕봉이 더 높다는 것을 알고 천왕봉 프로젝트로 바꿨습니다.”
무슨 개그맨들이 만든 팀 같죠. 등산이라고는 전혀 안 해 본 사람들이 모인 팀이 분명합니다. 조 상무는 “팀원들이 북한산부터 한라산까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산을 돌아 다니며 이 휴대전화를 써봐라 여기서도 터진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합니다.
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 빼고는 별 거 없었던 이 팀은 그 후 의지와 자신감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보는 사람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목표를 향해 직원들을 밀어부치는 삼성전자 이기태 사장 큰 몫을 했을 겁니다.
삼성전자는 96년엔 170g으로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디지털 휴대전화기를 만들었습니다. 99년엔 세계최초 MP3플레이어 내장 휴대폰, 2000년에는 세계최초 카메라폰을 내 놓습니다. 결국 해외업체들은 한국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 당합니다.
휴대전화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웬만하면 한국 기업들이 세계 최초, 세계 제일 제품을 내 놓습니다. 하도 많다 보니 한국 휴대전화 업체가 세계에서 처음,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기사 거리 취급도 못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 결과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본부는 한때 매출의 30%에 육박하는 순익을 기록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룸싸롱 순익률이 있습니다. 매출의 25%를 넘으면 룸싸롱보다 매출 대비 순익이 높은 회사라고 합니다. 치열한 경쟁 체제에선 이론적으로는 일어나기 힘든 일입니다. 나쁜 말로 이야기하면 사기, 좋게 표현하면 비정상적인 이익입니다.
몇년간 삼성전자는 휴대전화에서 비정상적인 이익을 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순익율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10%에 못 미치는 현재 순익도 훌륭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상무에게 물었습니다. 30%에 가까운 수익률이 비정상이었던거 아닐까요?
"비정상이죠, 그러나 한국 시장 순익률은 과거와 비슷합니다."
이게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세계 휴대전화의 미래입니다. 한국에서 나온 신기능 최신형 휴대폰이 얼마 후 세계 시장에 나옵니다. 삼성전자는 국내시장에서 DMB폰 같은 신기능 휴대전화를 앞세워 과거와 비슷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고가의 DMB폰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하면 다시 과거와 같은 실적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이 어렵습니다. 한국 휴대폰 업체에 밀리던 전통의 해외 휴대폰 강자들이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모토로라 레이저가 국내 시장에서 사실상 판매 1위를 차지했을 때 이미 예상했던 일입니다. 애니콜도 아닌데 한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었다면 해외에선 대단한 인기를 끌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위기라고는 하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다행히 국내 시장은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 휴대전화 업체들에게 미래가 있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걱정스런 부분도 있습니다. 요즘 휴대전화에 불만을 표시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주로 첨단 제품들이 너무 불안정하다는 내용입니다. 새로운 기능은 좋지만 그 기능을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힘듭니다. 또 여러가지 기능을 구겨 넣다보니 휴대폰 자체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 소비자들이 쓰기 힘든 제품은 외국에서도 쓰기 힘들겁니다.
/백강녕 young10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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