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정리함

내 연인이 부끄럽다!창피하다!

서나노야 2006. 9. 26. 23:00
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 내 연인이 부끄럽고 창피하다니!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어보면 사실 이제껏 사귄 사람 중 비록 찰나라도 그런 적은 있었잖아. 나만 그렇다고? 에잉, 무슨 소리. 여성들은 연인이 언제 부끄러울까?

① 동문회 때 썰렁한 농담하며 분위기에 적응 못할 땐 정말 “모르는 사람이에요~” 말하고 싶다.

② 술 취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옆자리 커플에게 시비 걸고, 길거리에 드러눕는 그가 부끄럽다. 그 놈의 술이 문젠가?

③ 그의 키가 작은 걸 알면서도 좋아했지만, 하이힐 신으니 나보다 10센티나 작은 걸 보니, 정말 뜨악~.

④ 어제 입었던 바지 오늘 또 입고, 오늘 입은 바지 이주일 내내~ 그걸 아는 사람에게 지적당했을 때 내가 다 부끄럽다.

⑤ “어디서 된장 냄새 나지 않니?” 친구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테이블 아래 신발을 벗고 있었다는 사실을….

⑥ “동경 가봤어요?” 라는 질문에 “도쿄는 가봤어요” 라고 대답하던 남자친구.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안 되는데….

⑦ 친구들 사이에서 ‘빈대’로 통하는 그가 참… 안쓰럽고도 창피하다.

⑧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위축되어서 말할 때도 ‘덜덜덜’ 떠는 그. 내가 다 ‘덜덜덜’ 떨며 쥐구멍에 숨고 싶어진다.

⑨ 티셔츠를 입으면 배만 불뚝 나오는 남자친구. “친구들에게 아저씨형 몸매를 지닌 연인을 소개시켜주기 부끄럽다구!”

⑩ 그를 사랑하지만 어디 가서 그의 나이 밝히기가 망설여진다. 누가 봐도 44살 같은 24살이기에.

남루함, 위축, 누추함, 빈곤, 술주정, 빈대, 악취, 눈치 없음, 무식, 썰렁, 단순, 소심, 배불뚝이, 사차원, 수다, 노안, 추남, 단신, 괴팍

한번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연인의 안 빤 운동화조차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창피하게 느껴지는 법.

하지만 운동화 그까짓 거 더러우면 어때. 내가 새 운동화 사주면 되지. 누가 운동화 보면서 사랑하나?

술주정, 그게 싫다면 내가 더 심하게 꼬장 부리면 되잖아. 그라고 언제까지 술만 마시고 살겠어?

남루함? 초라함? ‘숙자’ 님들만 아니면 된 거 아냐?

뭐 사랑하니까 무조건 ‘예쁘게 보라’ 는 말은 않겠다. 다만 내가 그를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도 뭔가 나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 있을 거다.
상대의 흠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이미 콩깍지가 벗겨졌다는 건데, 그럴 때쯤엔 상대도 이미 나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져 있을 거란 말씀. 그러니 그도 나를 보며 ‘부끄럽고 창피하다’ 라고 생각할 때가 분명 있을 거란 말이지.

사랑은 온유하며, 오래 참고, 자만하지 아니하며…
그러니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상대를 보는 눈도, 나를 보는 눈도 객관적으로 기르고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의 부족한 모습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을 하도록 노력하자는 거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창피하다면?
흠…. 뭐, 그도 날 항상 곱게 보지는 아니할 테니, 서로 부끄럽고 창피하니 피장파장 찰떡궁합인 건가?

사진 출처/ 영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