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정리함

루퍼트 머독의 '머독 스타일'

서나노야 2006. 9. 11. 09:04

전 개인적으로 루퍼트 머독(Keith Rupert Murdoch) 뉴스 코퍼레이션 회장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루퍼트 머독은 1952년 유명한 종군기자이자 신문 발행인이었던 아버지 키스 머독 경(卿)이 작고하자, 호주 애들레이드 시의 ‘선데이 메일’(Sunday Mail)과 ‘더 뉴스’(The News)라는 2개의 작은 신문사를 상속받아 운영하면서 미디어 재벌로 성장한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신문제작의 초점을 스캔들·섹스·스포츠·범죄에 맞추고 신문의 판매부수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면서 작은 부(富)를 이뤘고, 이를 종자돈 삼아 호주, 영국, 미국,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중국 순으로 세계의 미디어시장을 파고들어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그의 삶은 ‘당대(當代)에서도 이 만큼 가능 하구나’라는 감탄을 낳게 합니다. 현재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은 뉴욕포스트, 타임스, 폭스 방송, 20세기 폭스, 스타 TV 등 52개국에서 780여 종의 사업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가 지배하는 모든 사업체의 화폐가치는 약 600억 달러입니다. 물론 루퍼트 머독에게는 ‘악덕’ ‘포식자’ 등의 이런 저런 오명도 따라 붙습니다만, 그가 이룬 것은 놀라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루퍼트 머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매스 미디어 분야에서 그가 이룬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1931년 3월11일 생으로 올해 만 75세인 그의 ‘정렬’이 더욱 놀랍다고 생각하기에, 가끔씩 외신으로 전해지는 루퍼트 머독의 행보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실 머독은 1999년 69세의 나이에 홍콩 스타TV의 부사장이었던 37세 연하의 웬디 덩(Wendy Deng)과 세 번째로 결혼을 함으로써 사업 이외의 영역에서도 자신의 정열을 입증하였습니다. (사진은 2001년 촬영된 머독과 그의 젊은 부인입니다.)

이런 루퍼트 머독에게 있어서 요즘의 관심은 단연 인터넷인 것 같습니다. 2005년 7월 뉴스 코퍼레이션이 마이스페이스닷컴을 인수한 이래, 루퍼트 머독은 인터넷이란 금광(金鑛)을 캔 것 같이 인터넷이란 뉴미디어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붇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 출판, TV라는 매스미디어로 성장한 그가 인터넷 중심의 '비욘드 매스미디어' 전략을 적극 펼치면서, “과연 70세 넘은 노인에게서 어떻게 저런 비전과 열정이 나올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호에 실린 와이어드(wired)지의 루퍼트 머독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런 언급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날과)비교할 만 것은 찾고 싶다면 출판인쇄술이 탄생한 500년 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출판기술에 의한)매스미디어의 탄생은 왕과 귀족의 낡은 세상을 실제로 해체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미디어)기술은 에디터, 발행인, 기성 권력, 미디어 엘리트 집단이 향유했던 권력을 빼앗고 있습니다. 이제는 민중(people)이 통제권한을 행사하는 시대입니다.(중략) 인터넷이야 말로 미디어의 황금기에 있습니다."

와이어드에 실린 글은 요 근래 루퍼트 머독의 언행으로 볼 때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 매스미디어의 제왕으로 누릴 만큼 누렸던 그가 ‘뉴미디어 시대의 권력 이동’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소름끼치도록 놀라운 머독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우리도 75세의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200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제가 몰랐던 이야기가 와이어드 잡지에 실려 있군요. 루퍼트 머독이 마이스페이스닷컴을 무려 5억8000만 달러를 주고 매입했던 당시의 뒷얘기는 부하를 다루는 용병술, 미디어 산업 트렌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과감한 의사결정, 먹잇감을 정해 맹렬하게 달려들어 해치우는 머독의 인수전략을 단적으로 설명해줍니다. 이른바 ‘머독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지금은 마이스페이스를 관리하는 폭스 인터액티브 미디어의 사장이 된 로스 레빈손(Ross Levinsohn)은 2005년 1월 당시 41세로 폭스 스포츠의 온라인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CBS의 스포츠라인닷컴(SportsLine.com)과 알타비스타(AltaVista)를 거친 온라인 비즈니스의 베테랑이었습니다.

1월의 어느 날 레빈손은 ‘Hi, this is Rupert Murdoch'이라는 루퍼트 머독의 느닷없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잠시 얘기할 수 있나(Got time for a chat?)"는 질문에 "좋습니다. 언제요?(Sure. When?)"라고 답했고, "지금 당장 보자(How about now)"고 해서 레빈손은 머독과 독대를 했다고 합니다. 평소 자기 회사의 오너(머독)를 만날 일이 없었던 레빈손은 머독의 호출에 뭔가 질책과 함께 해고 통보를 받을 것 같아 긴장했는데, 머독은 뜻밖의 주문을 했습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누구든 원하는 사람을 데려다 쓰고, 어디든지 마음대로 돌아 다니게. 그리고 두 달 후 뉴스코퍼레이션의 인터넷 사업전략을 만들어 가져오게"

사실 머독은 일찍이 인터넷 투자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고 투자시도의 결과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90년대 중반 포인트캐스트(PointCast)라는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4억5000만 달러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90년대 루퍼트 머독은 인터넷보다는 위성방송과 고화질TV에 역량을 집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IT기술과 IT미디어에 대한 머독의 인식은 “우린 기술 기업이 아니고, 너무 빨라서도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2005년 들어 인터넷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애플의 아이튠스, 구글의 검색기반 포털사업, 그리고 P2P(Peer To Peer) 네트워크가 정통적인 매스미디어의 대항마로 부각되면서 나름대로 위기의식을 가지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됐든, 루퍼드 머독의 특명을 받은 로스 레빈손은 2005년 봄 80쪽짜리 인터넷 사업전략을 완성했습니다. 이 사업전략의 골자는 스포츠, 뉴스와 엔터테인먼트 등 뉴스코퍼레이션이 이미 엄청난 콘텐츠를 확보한 영역에서 광대역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에 ‘신속하게’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고서의 결론은 ‘스피드가 중요하다’(speed is critical)는 것이었고, 이런 맥락에서 레빈손은 8개의 인수대상 기업을 뽑았고, 이중에서 최우선의 인수대상을 2개 기업으로 압축해 머독에게 제안했습니다.

바로 이 두 기업이 지금 현재 뉴스코퍼레이션에 흡수된 IGN과 인터믹스입니다. IGN엔터테인먼트는 세계최대의 게임웹진 IGN뿐만 아니라 게임스파이, 파일플래닛, 로튼토마토, 팀엑스박스, VE3D 등의 하위 사이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화, 자동차 등 폭넓은 분야를 다루고 있는 종합엔터테인먼트 그룹입니다. 또 인터믹스는 2005년 당시 마이스페이스닷컴의 최다 주주이자 운영사였습니다.

머독은 이때부터 스피드를 낸 것으로 보입니다. 레빈손의 제안서를 받은 지 불과 수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그해 7월 인터믹스를 5억8000만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이어 두 달 후엔 IGN은 6억8000만 달러에 사들였습니다. 두 기업의 인수작업은 실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것이며, ‘스피드가 중요하다’는 보고서에 매우 충실한 행보였습니다. 두 기업을 합해 12억 달러가 넘는 돈을 불과 수개월간의 분석과 협상을 통해 집행할 사람은 결코 흔치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일단은 성공한 M&A로 평가받는 인터믹스 인수 과정에서 머독의 경쟁자는 미국의 또 다른 미디어 재벌인 바이어컴이었는 데, 뉴스코퍼레이션은 바이어컴보다 5000만 달러를 높게 인수가격을 제시함으로써 결국 2005년 7월 마이스페이스닷컴을 손에 넣었습니다. 마이스페이스닷컴 인수경쟁에서 바이어컴이 막판까지 주판알을 튕기면서 최대한 인수가격을 낮추고자 할 때, 머독은 과감한 배팅으로 마이스페이스닷컴을 사들인 것입니다.

루퍼트 머독은 2005년 이후 인터넷에 투자한 돈이 무려 15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머독은 구글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습니다. “구글이 마음만 먹었다면 우리가 산 돈의 절반에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별 것 아니잖아. 그냥 우리가 하면 되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는 말입니다. 철저히 인수에 의한 외연 확장에 충실했던 머독의 전략적 판단과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의 잠재적 실패 가능성에 대한 머독의 철저한 경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머독은 만드는 것(building)보다 사는 것(buying)에 익숙한 것이지요.

머독은 뉴스코퍼레이션의 전통적 비즈니스가 '콘텐트‘(content)와 ’배포'(distribution)의 두 축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두 개의 원을 그렸습니다. 이어 콘텐트와 배포라는 두 개의 원이 상호 교차하는 교집합에 바로 마이스페이스가 위치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강력하고 유연한 미디어 플랫폼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머독은 우리나라의 사이월드 같은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닷컴을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시장에서 루퍼트 머독의 신화는 계속될까요. 앞으로 흥미있게 지켜볼 대목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