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6일부터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제3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한미 양측간의 본격적인 기(氣) 싸움이 펼쳐질 전망이다.
1, 2차 협상이 서로의 마음을 떠보는 차원이었다면, 3차 협상은 양측이 제시한 양허안과 유보 리스트를 들고 밀고 당기는 진짜 협상이 벌어지게 된다.
때문에 3차 협상을 앞둔 우리 협상단은 치열한 격전장에서 써먹을 무기(협상카드)를 만들기 위한 작업과 도상연습에 분초를 다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번 3차 협상에 나서는 우리 한미FTA 협상단 인원은 17개 분과 2개 작업반에 모두 220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80여 명을 포함해 관계부처 공무원과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한미FTA기획단이 있는 외교통상부 건물 6층은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협상단의 사령관격인 김종훈 수석대표 아래에 분과장, 작업반장들이 핵심을 이루고 해당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분과원(작업반원)들이 그 뒤에서 자료수집, 협상내용 분석 등을 통해 서포터를 해주고 있다.
분과장 및 작업반장들은 협상능력은 물론 해당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춘 통상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17개 분과 중에는 2, 3명이 함께 공동 분과장을 맡는 경우도 있다. 축구에서처럼 협상경험이 풍부한 외교부 소속 분과장과 전문성을 갖춘 관계부처 소속 분과장이 2톱, 3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적재산권 분과의 공동분과장인 외교부 이건태 지역통상국장이 협상테이블에서 무기를 다루는 전투대장이라면, 문화부 김정배 저작권과장은 탄약을 조달해 주는 보급대장인 셈이다. 협상단은 1, 2차 협상 때 미국의 패를 읽었고 3차 협상 때 배팅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했다.
## 업계의견이 곧 협상카드
22일 오후 4시30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손해보험협회 회의실. 한미FTA 협상에서 금융서비스 분과장을 맡고 있는 신제윤 재경부 국제금융심의관이 생명보험 및 손해보험 업계관계자들을 만났다. 업계의 의견을 바탕으로 3차 협상 때 내놓을 카드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신제윤 금융서비스분과장이 22일 생명보험 및 손해보험사 관계자들을 만나 업계 의견을 듣고 있다.
“여러분께 미국측 요구를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미FTA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업계에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줘야 협상에서 내주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을 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신 분과장은 지금까지의 협상추진 과정과 협상내용, 업계에 미칠 영향 등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는 협상테이블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결국 업계의견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전했다. 그래서 이번 3차 협상 때는 보험협회 등 관련단체 관계자 5명도 옵저버 자격으로 시애틀 현지에 같이 간다.
그의 협상능력과 전문지식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5년간 금융분야에서만 공직생활을 해왔고, 1994~95년 한미금융협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참가해 경험을 쌓았다.
특히 1996~98년 미 캘리포니아 보험감독청에서 파견 근무했던 경험은 미국 협상단의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간파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는 1차 협상 때 구체적으로 질문공세를 퍼 붓자 미측이 여러 FTA를 해왔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것은 처음이라며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귀띔했다.
“3차 협상은 서로 교환한 유보안을 가지고 치열한 공방이 오갈 겁니다. 합의되는 것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측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협상입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부정적인 보도 등으로 우리 협상단이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 의심할 때도 있었다고 토로하고 오늘 설명회를 통해 업계 못지않은 전문지식과 대비책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 협상의혹 풀건 풀자고요
23일 오전 8시, 통상교섭본부 한미FTA기획단 사무실은 이미 출근한 직원들로 부산했다.
기획단의 모든 일을 총괄책임지는 이혜민 단장은 아침 일찍 국제경제법학회 소속 교수들을 만나 한미FTA와 관련한 사회갈등통합 문제, 외교안보적 효과 등에 대해 의견을 듣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나머지 직원들은 오전 10시부터 있을 국회 특위에 대비한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원경 한미FTA기획단 총괄팀장은 “지난 17일 열렸던 국회 3차 특위가 자정을 넘겨 끝났다”면서 “오늘 특위도 장거리 마라톤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충분한 답변을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전했다.
23일 국회 한미FTA 특위 제4차 회의 현장.
김 팀장은 통상분야의 베테랑이다. 주미국 1등 서기관을 지냈고 통상전략과장 때는 짧지 않은 협상경력을 쌓았다. 이런 경험 때문에 지금은 FTA지역교섭과장 및 한미FTA기획단 총괄팀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사실 우리가 한미FTA를 준비한 지는 오래됐다”며 “2001년부터 1년에 4차례 미국 협상단과 만나서 양측의 통상현안을 논의했기 때문에 서로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는 상태”라면서 한미FTA가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사무실 한켠에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공공의 적 FTA'라는 문구의 포스터 하나가 붙어있었다. 이유를 묻자, 김 팀장은 “이 포스터를 보면서 국민을 위한 협상이 되도록 각오를 다진다”며 “우리도 협상단의 일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의 뜻에 어긋남이 없도록 협상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오후 5시쯤 국회특위 장소에서 만난 김종훈 대표는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는 “협상단이 3차 협상 준비에도 빠듯한 시간이지만, 국회의 이해를 구하고 불필요한 의혹 해소와 정부의 협상추진 방향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면 밤을 새는 것이 문제가 되겠느냐”며 반문했다.
김 대표는 “3차 협상도 결코 쉬운 협상이 아니다. 양국간에 이익의 균형이 잘 맞는 결과를 도출하도록 준비를 잘 하겠다”면서 “당당히 협상해 나가겠다. 국민의 지지와 격려 속에서 협상하면 협상력이 배가될 것”이라며 국민의 성원을 부탁했다.
## 연일 야근, 최종 협상대책을 조율하다
제3차 한미FTA 협상을 열흘 앞둔 24일 한미FTA기획단 직원들은 밤 10시가 넘어서도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25일 오전 10시 외교통상부 17층 대회의실에 김종훈 대표를 비롯한 분과장과 작업반장들이 모두 모였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3차 협상을 최종 조율하기 위해서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협상단원들은 전날 밤에도 자정 가까이 돼서야 퇴근했다. 김진욱 협상지원팀장은 “미국을 상대로 우리가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미측 협상단보다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며 “연일 야근에 몸이 축나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해 주는 것이 인사가 됐다”고 전했다.
하루 1시간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점심이나 저녁을 빵 한조각과 우유 한잔, 컵라면으로 대신할 때도 많다. 어떤 직원은 협상이 끝날 때까지 아내와 자녀를 지방 처가(妻家)에 가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졸속추진이니 협상경험과 전문지식이 없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힘이 쫙 빠진다. 특히 ‘친미 매국노’라고 매도당할 때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한 직원은 “아버지가 PD수첩을 보시고 전화해서는 '네가 하는 일이 방송에 나온 것 아니냐'며 당장 그만두라고 해 속상했다”며 “말도 안 되는 방송 보시고 아들 하는 일을 이해해 주시지 못 하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고 토로했다.
제3차 한미FTA 협상에 앞서 25일 오전 10시 전체 대책회의를 갖는 한미FTA 협상단.
그들에게는 미측보다 협상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측보다 두 배 이상의 땀을 흘리겠다는 각오로 문구 하나하나 조목조목 분석해 협상테이블에 들고 들어간다.
유명희 분과장은 “미국이 협상경력에 있어서는 우월하다. 하지만 그들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1, 2차 협상을 통해 찾아냈고 3차 협상 때 무기로 활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했다.
한미FTA 협상단은 엉킨 실타래를 한 울 한 울 풀듯이 협상에 임하고 있다. 그럴수록 그들의 협상력도 배가 된다. 여기에 국민의 지지가 보태진다면 천군만마를 얻게 된다. 월드컵 때 축구대표팀에게 보냈던 응원의 박수를 그들에게도 안겨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