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정리함

그리움으로 짓는 마음 속의 집 '고향을 그리며♧

서나노야 2006. 10. 21. 10:19




“그들에게 한국은 한마디로 말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할 수 있죠. 궁핍하고 어려운 생활 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 중의 누구라도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벌어야 하고 저임금의 노동이지만 불법체 류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이 땅에 남아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최근 불법 체류자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필리핀이나 이란 같은 유색 민족에게 한국 생활은 더욱 버텨내기 힘든 상황이 되었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하고 있는 정동제일교회 사회교육관에서 만난 신윤숙 강사는 지난 2002년‘정동한글문화학교’가 세워질 때만 해도 필리핀, 이란, 중국, 몽고 등 북부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 들어온 노동자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었으나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현재는 한국인과 외견상으로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몽고인들만이 겨우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무료로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짬을 내지 못하는 생활이 늘 안타깝다는 신윤숙 강사는 정해진 수업 시간이 있어도 찾아오는 인원이 일정치 않아 진도를 맞출 수 없고, 불법체류라는 불안정한 생활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언제 다시 찾아올지 알 수 없어 그룹 지도 보다는 대부분 그때그때 일대일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

“현재 이곳에서 15명 정도의 몽골분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읽기와 쓰기 외에도 한국어능력시험을 대비한 문제풀이로 수업이 이루어지죠. 수업하면서 제일 안타까울 때는 급하게 말을 배워야하는 분들이세요.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분들이 어디든 취직해서 생활하려면 간단한 회화가 가능해야 하는데 현재 몽고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교사가 없어 커뮤니케이션 단절로 인해 중도에 포기해야 할 때입니다.”
자원봉사를 시작한지 이제 2개월 남짓. 그들의 한국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현재 몽고어를 함께 배우고 있다는 임성환 교사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표정과 몸짓을 이용해 조금씩 그들과 마음의 간격이 좁혀질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또한 단순히 언어만을 전달하는 학습만이 아닌 함께 공감하고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커뮤니티 장을 만들어 주기 위해 짬짬이 전시회나 영화 관람 등의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강의실을 벗어나 그들과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국을 찾은 사연은 모두 제 각기 다르지만 목표는 언제나 한가지로 통한다고 말했다.‘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으로 말이다.


한국에 들어온 지 5년 째 접어들었다는 목지거(44세) 씨는 몽골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와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상태다. 몽골에서는 소위 사회 고위직이라 불리는 의사, 사장, 교수들도 한 달 임금이 30~50만 원 선에 불과하고 일반인들은 10만 원 선이 고작인데 반해 한국에서 봉제공장을 다니며 그녀가 받는 100만원이 넘는 월급은 불법체류를 해서라도 이 땅에 남아있어야 하는 가장 절박한 이유일 수 밖에 없었다.
“돈 많이 벌어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게 소원이에요. 현재 몽골에 남편과 두 딸이 있는데 보고 싶은 마음에 늘 마음이 아프죠. 그럴 때마다 보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처럼 잘 안돼요. 그래서 2년 전에 딸아이 버삐(21세)가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몽골에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한국에서 공부를 이어가려고 했는데 쉽지 않아요. 지금은 봉제공장에서 업무보조 일을 하면서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지거 씨의 경우 몽골에서 미싱일을 했기 때문에 일단 한국에서 필요한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 비해 대우가 좋은 편이고, 2년 전 딸 버삐까지 한국에 들어와 있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은 해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로 한국생활 10년째 접어들었다는 잉케(40세) 씨는 아직도 봉제공장의 보조 일을 하며 기러기 가족으로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몽골에서는 국립음악단 소속으로 가야금을 연주했어요. 이혼후에 돈을 벌기위해 한국으로 건너왔죠. 친정아버지가 두 딸아이를 돌봐주시는데 아이들이 보고 싶어 매일매일 전화를 해요. 아이들을 데려오고 싶어도 불법체류 상태니까 그렇게도 못하고 돌아가기엔 생활이 넉넉지 않아 용기가 안나요.”
해가 바뀔 때마다 매번 돌아갈 생각을 한다는 그녀는 문득문득 아이들이 생각날 때면 당장 내일이라도 짐을 싸고 싶다는 말과 함께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맺혔다.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벌어 몽골의 가족에게 보내야 하는 그들에게 가족과 고향은 어느새 가슴 속에 뭉친 딱딱한 돌덩이처럼 박혀 생각만으로도 가슴 아픈 눈물이 되어버렸다.
“고향 생각이 가장 많이 날 때는 아무래도 명절인 것 같아요. 한국의 설이나 추석처럼 몽골에도 새해를 맞이하는 2월과 러시아로부터 독립된 날을 기념하는 7월에 축제가 있어요.그날은 한복처럼 몽골사람들도 민속옷을 갈아입고 민속경기를 하는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죠. 한국에서 명절날 일안하고 집에서 쉬는 건 좋은데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어 많이 외로워요.”


한국에 온지 3년째 접어들었다는 또야(24세) 씨는 몽골에서 대학을 마치고 방송국 일을 하다가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처음엔 한국어학당을 다니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100만원이 넘는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채 불법체류 상태로 현재 진학을 앞둔 몽골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지도하는 교사로 활동 중이다. 또한 몽골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아이템을 찾아 비즈니스 비자로 입국했다는 아리옹볼라그(24 세) 씨는 3개월 후 몽골로 돌아가기 위해 동대문 상가를 돌아다니느라 분주하고, 5년 안에 몽골에 집을 사겠다는 각오로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바(24세) 씨 역시 고향에서 가족과 행복한 해후를 꿈꾸며 고된 한국생활을 참아내고 있다. 언제가 될지 누구도 정확히 그 날을 기약할 수 는 없지만 그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먼 훗날 마음속에 그려 놓은 고향이란 울타리안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갈 꿈이 있어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