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공원」이 대성공을 거두자 「쥬라기공원(II)」와 「쥬라기공원(III)」이 연이어 제작되었다. 뒤에 나온 두 편은 「쥬라기공원」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되었지만 「쥬라기공원(III)」은 「쥬라기공원」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쥬라기공원(III)」은 「쥬라기공원」의 무대이던 '이슬라 소르나'(일명 '인젠 사이트 B')에 학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공룡의 서식지로 변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쥬라기공원(III)」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공룡연구에 최고 권위자인 알랜 그랜트 박사는 공룡 '벨로시랩터'의 지적 능력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연구하면서 연구비 마련 대책에 고심하고 있던 중, 사이비 재벌 폴 커비와 그의 부인 아만다 커비로부터 연구비를 대줄테니 '이슬라 소르나'(일명 '인젠 사이트 B')의 관광 가이드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섬은 「쥬라기공원」에서 존 하몬드가 처음 쥬라기 공원을 세우려고 한 곳이다.
그런데 인간의 의도와는 달리 이 섬이 공룡의 번식처가 되어 버렸고, 이후 모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공룡을 찾아 떠나는 공룡의 원천지로 변모했다. 그런데 「쥬라기공원」에서 만든 공룡들은 자체적으로 번식할 수 없도록 조작했는데 이곳에서의 공룡들은 알아서 진화하면서 새끼들을 낳을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개구리의 DNA 때문에 공룡들이 양성이 되어 서로 교미가 가능했다고 설명된다.’
「쥬라기공원(III)」에서 익룡이 뒤뚱뒤뚱 거리며 걷는 장면은 바로 우항리에서 발견된 발자국에 기초로 한 것이다. 우항리에서 익룡발자국이 발견되기 전까지 학자들은 익룡이 어떻게 걸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항리에서 발견된 익룡의 발자국에 의하면 익룡은 날개를 접은 채로 앞발을 사용하여 어기적거리며 걸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백악기에 주로 번성한 익룡은 프테로닥틸루스류에 속하는 꼬리가 짧고 이빨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한반도에 살았던 익룡은 이빨이 잘 발달한 익룡으로 이빨 길이가 7센티미터나 됐다. 이들은 호숫가 절벽에 살면서 긴 날개를 이용해 바람을 타고 활강해 내려와 호수 수면 위를 낮게 날다 수면 가까이에 있는 물고기를 날카로운 이빨로 재빨리 낚아챘다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전희영 박사는 적었다.
공룡의 정보는 발자국으로부터 「쥬라기공원」 제작팀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정도로 한반도가 공룡의 교과서가 된 것은 공룡에 대한 발자국 화석이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고생대 말기가 되어 바다 속에 있던 한반도는 육지가 되었는데 이 당시 중국, 한국, 일본은 하나의 땅덩어리로 붙어 있었으며 기후도 온난했다. 중생대 쥐라기에 한반도의 지각이 크게 휘어지는 변형이 생겨 소백산맥과 같은 습곡이 생겼고 거대한 호수들이 생겨났다.
중생대 초기 백악기의 한국은 호수의 나라였다. 미국의 오대호나 중앙아시아의 바이칼호에 견줄 만한 거대한 호수가 생겨났고 경상도 일대를 포함하는 경상분지에만 큰 호수가 3곳이나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남해안에서 일본 대마도까지 걸치는 거대한 호수였다.
이 백악기 지층을 ‘경상누층군’이라 하는데 경상누층군은 우리나라 중생대를 대표하는 지층으로서 남한 전체 면적은 1/4를 차지하며 퇴적층의 총 두께도 9킬로미터에 달한다.
당시 한반도 기온은 아주 온화했고 호수 주위의 식물도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이런 호수를 중심으로 공룡의 천국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룡 화석이 발견된 것은 1973년 8월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수문동 해안 지역에서 경북대학교의 양승영 교수에 의해서 공룡의 알 껍질이 암석 속에 박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반해 김항묵 교수는 자신이 1973년 1월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지역에서 공룡의 골격 화석을 발견했으므로 양승영 교수보다 7개월이 앞선다고 주장했다. 이 공룡 뼈 화석은 석회암 속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지름이 35밀리미터이고 골수가 있던 가운데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학회에 곧바로 보고되지 않았고, 1977년에야 발표되었다. 그 때문에 이 문제는 발견 시점과 발표 시점의 논란으로 비화되기까지 하였는데 《과학동아》는 1997년 3월호에서 학계에서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발표 시점을 중요시해서 한국 공룡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양승영 교수라고 기술하였다.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 지역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도 1982년 양승영 교수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지름 35센티미터 내외, 깊이 20센티미터의 발자국 가운데는 3개의 발가락 윤곽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이곳에서는 공룡 한 마리가 세 발자국 이상 걸어간 보행렬만 해도 247개나 남아 있다. 지름 15센티미터 이하의 육식성 랩터류의 발자국은 물론 2~7미터의 퇴적 지층 위에 빗살무늬 모양의 새의 발자국도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때 발견된 발자국 가운데는 중국의 최대 공룡인 마멘키사우루스(마문계룡)의 약 3배에 이르는 거대 용각류의 115센티미터 짜리 발자국과 9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새끼용각류 발자국도 발견되어 세계에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 대형 발자국의 주인공인 용각류는 긴 목과 긴 꼬리에 거대한 몸통을 가진 초식 공룡으로서 흔히 보는 공룡 시대를 그린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룡류이다. 용각류는 덩치는 크지만 무섭지는 않고 오히려 평화로운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후 영남 지역 곳곳에서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어 어느 정도 넓은 지층면이 보이는 곳은 거의 모두 공룡의 화석이 발견될 정도였다. 미국 캔사스 대학교의 래리 마틴 교수는 한국의 남해안 지역에서만 1만 개 이상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는데 이 때문에 한국이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역의 하나로 꼽힌다고 말했다.
공룡 화석은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발견되다가 1991년 4월 전라남도 해남군 우항리 일대에서 공룡과 날아다니는 파충류로 알려진 익룡의 발자국, 그리고 물갈퀴를 가진 새의 발자국이 새겨진 화석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화석군이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조각류 발자국이 우세하지만 용각류, 수각류 등의 발자국도 보인다. 특히 우항리의 익룡 발자국은 세계에서는 7번째이나 아시아에서는 최초의 발견이다. 발견 당시 익룡의 발자국은 귀고리 모양의 앞발과 5개의 발가락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또한 익룡 발자국 크기가 최대 35센티미터나 되어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졌던 스페인의 익룡 발자국보다 약 5~8센티미터가 더 큰 세계의 최대의 발자국이며 백악기 후기에 나타났던 케찰코아툴러스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룡발자국에는 수각류의 것도 있다. 수각류는 두 발로 달렸는데 중생대의 육지를 지배했던 힘있는 포식자로 알려져 있다. 수각류 가운데 제일 유명한 공룡은 ‘벨로키랍토르(Velociraptor)’와 ‘데이노니쿠스(Deinonycus)’. 각각 ‘빠른 약탈자’와 ‘무서운 발톱’이라는 뜻인데 키는 사람보다 작지만 빨랐다. 이들은 영화 「쥐라기 공원」에도 ‘랩터’라는 포악한 약탈자로 등장한다. 이들이 무서운 이유는 뒷다리 둘째 발가락에 붙어 있는 날카롭게 휜 발톱 때문이다. 이 발톱 공격을 당한 사냥감은 피를 많이 흘리고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런 공룡의 발톱이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었다. 몇 개의 이빨과 종아리뼈와 함께 발견된 이 발톱은 공룡 사전에 코리아라는 이름을 남기게 하였다. 1979년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코리아노사우루스(Koreanosaurus)’라고 명명되었으나 이 공룡은 1993년에는 데이노니쿠스의 일종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데이노니쿠스코레아넨시스(Deinonychus Koreanensis)’라는 정확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 외에도 한국 사람이 이름 붙인 공룡들은 몇 가지 더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의 공룡계곡에서 발견된 ‘울트라사우루스(Ultrasaurus Tabriensis)’는 우리말로 ‘탑리 한외룡’이라고 불리며 ‘김씨이구아노룡(이구아노돈)’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이정모 박사는 설명했다.
발자국의 형태는 발가락에 따라 둥근 원반 모양, 굵은 새 발가락 모양, 뾰족한 왕관 모양으로 다양하다. 발자국의 크기는 발자국의 형태와 더불어 공룡의 종류를 유추해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발자국 사이의 간격은 공룡이 걸었는가 또는 뛰었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공룡은 보통 일렬로 반듯이 걸어 다녔기 때문에 보행렬을 통해 몇 마리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를 알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어미와 새끼가 동행했는지의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화석에는 동물의 뼈나 조개껍데기처럼 생물의 몸 자체가 남아 있는 실체(實體) 화석이 있고 동물의 발자국이나 동물의 배설물 등의 생흔(生痕) 화석이 있다. 그러나 실체 화석만을 보던 사람들에게 생흔 화석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전희영 박사는 생흔 화석은 화석이 된 동물이 살았던 환경이나 생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룡의 골격만 가지고는 그 공룡이 어떻게 걸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모여 살았는지를 알 수 없다. 골격 화석은 그 생물의 존재 여부와 모양, 크기 등을 알게 하지만 생흔 화석은 그 생물의 사는 모습과 움직임 등을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발자국 화석은 동물이 살아 움직인 흔적이므로 공룡이 살아 있을 당시의 정황을 유추하는 데 좋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더구나 발자국이 만들어진 바로 그 장소에 보존되기 때문에 암석의 생성 환경도 직접 알려줄 수 있다. 물리적 환경 조건만 허락하면 하나의 생물이 수많은 발자국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성도 좋아 선택적으로 발견되는 체화석보다 더 많은 자료의 확보가 가능하다.
우선 공룡의 발자국 화석으로 육식 공룡이었는지 또는 초식 공룡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발자국 임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첫 단계에 불과하고 그 동물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동했는가도 알아낼 수 있다. 심지어는 공룡의 몸무게, 지능 지수, 크기까지 규명할 수 있다.
공룡 골격화석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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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전시관,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공룡에 대해 매력을 일으킨다(우측이 익룡) |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의 학자들을 설레게 하는 발자국은 많이 발견되지만 완전한 형태의 공룡 뼈 화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한국의 경우 퇴적층의 두께가 얇고 퇴적 작용의 기작이 외국의 공룡들이 대규모로 발굴되는 지층과 달라 대규모의 공룡 골격 화석이 박혀 있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물이 살던 곳과 죽어서 묻히는 곳이 같지 않으므로 설사 죽은 공룡이 공룡 화석이 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더라도 땅에 퇴적되는 과정에서 물에 휩쓸려 이동하는 일이 자주 있으므로 인간들에게 발견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 한반도가 온난다습하고 안정되어 살기 좋은 장소였다는 것이다. 생물이 살기 좋은 장소는 죽어서 그 시체가 보존되기 어려운 곳이다. 즉 골격이 화석으로 보존되려면 동물의 시체가 즉시 퇴적물 속에 매몰되어 다른 생물의 분해 작용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상에 던져진 동물의 사체는 다른 동물이나 미생물의 공격을 받아 몇 주일 안에 형체도 없이 분해되어버리므로 골격 화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홍수, 산사태 등으로 생물이 갑자기 매몰되어야 한다. 자연 미라가 발견되는 곳이 사막이나 빙하 속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한반도는 비교적 안정된 지층으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의성에서 공룡 뼈가 처음으로 발견된 후 현재까지 공룡 골격 화석이 산출된 곳은 10여 곳이 된다. 북한의 경우도 평북에서 공룡 골격 화석이 1980년대에 발굴되었다고 한다. 안동대학교의 이동진 교수도 경북 의성에서 온전한 공룡 뼈 화석을 발견했다. 공룡의 대퇴골을 포함해 뼈 5개가 출토되었고 묻혀 있는 뼈도 4개가 확인되었다. 더구나 공룡이 묻힌 곳은 ‘뻘’이 퇴적돼 굳은 결 고운 암석이라 화석의 보존 상태도 유례없이 양호하다.
우리나라는 공룡 화석이 많이 발굴되는 미국, 중국, 캐나다와 달리 사막이 없고 수풀이 지표면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에 공룡 화석의 발견이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었다.
그런데 2004년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는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공룡알 화석지 발굴 및 학술조사를 수행하던 중 전신 골격의 길이가 약 2미터 알에서 부화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새끼 공룡뼈 화석이 공룡알 둥지와 함께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공룡 발자국이나 뼈 파편 등의 화석이 발굴된 적은 있지만 완벽한 형태의 뼈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전신골격 부위는 견갑골 상완골 오훼골 흉골 각각 좌우 한쌍과 등골 8개,갈비뼈 9개 등이다. 두개골 부위나 치아 화석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이 공룡뼈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후기(8000만 년 전)에 살았던 초식공룡인 하드로사우루스류인 것으로 추측되지만 연구결과에 따라서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15개의 공룡알 둥지와 130여개의 공룡알도 새롭게 발견됐으며 5개의 공룡알 둥지가 완벽히 발굴 복원됐다. 또 같은 지층에서 완벽하게 발굴ㆍ복원된 공룡알 둥지는 이들 새끼 공룡이 완전히 자랄 때까지 어미 공룡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가설도 증명하고 있다.
또한 표본처리작업이 진행 중인 암석 덩어리 부분에 공룡뼈들이 묻혀 있어 연구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골격화석들이 발견될 것으로 보여 한국에서 골격뼈가 발견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아쉽게 했던 것을 해소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85퍼센트가 초식공룡이며 15퍼센트 정도가 육식공룡이다. 초식공룡으로는 목이 긴 브라키오사우루스, 오리주둥이 공룡으로 불리는 하드로사우루스, 이구아노돈 계통의 공룡 등 10여종이 살았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특히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공룡들 중에서 어린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목이 긴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류'가 한국에서도 살았다는 것은 학자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브라키오사우루스는 미국, 영국, 프랑스, 탄자니아에서만 발견되었으나 2000년 초에 발견된 공룡 이빨 화석을 토대로 2001년 4월 화석전문가 임종덕 박사가 밝힌 것이다.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쥬라기 공원」에서 주인공이 올라가 있는 나무 위의 풀을 먹던 바로 그 공룡으로 길이 23~30미터, 높이 12미터, 무게는 30~80톤 정도나 된다.
이빨 화석은 초식공룡인 카마라사우루스, 티타노사우루스, 키아유사우루스 등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서식했던 육식공룡으로는 알로사우루스가 알려져 있지만 공룡하면 쉽게 떠올리는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은 아직 한국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알로사우루스는 티라노사우루스와 크기가 비슷하며 1억~1억 2000만 년 전인 중생대 전기 백악기에 한반도에 살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