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정리함

극화 현상

서나노야 2006. 9. 28. 23:35
 
 익명성이 네티즌 여론 극화시켜 [미디어오늘]

여러분, 안녕하세요. 최근에 전 희한한 실험에 하나 참가하게 됐답니다. 가끔 혼자 있을 때 문득 어딘가로 불쑥 떠나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에요. 하지만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나 지금 비행기표 끊어서 일본으로 가버릴 거야!”라고 선언했을 때,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당신의 모험심은 어느덧 사라지고 일본행 비행기표 티켓을 순순히 포기하게 되지 않던가요? 말하자면 집단적인 의사 결정은 개인의 그것보다 훨씬 보수적이라는 거죠. 모험을 꺼리고, 되도록 안정적인 방향으로 결정하게 되는 성향.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말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수님께선 이게 정말일까 하고 많이 궁금해 하셨다나요. 혹시 그 반대의 경우인 것은 아닐까? 하시며 저와 같은 반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시더니, 곤란한 상황 하나를 놓고 저희끼리 토론해 보게 하셨습니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집단적으로 결정해 보라고 하시면서요.

내용인즉슨 3류 소설 작가인 헨리 씨가 아주 거대한 작품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완성만 된다면 종전에 쓰던 고만고만한 소설로부터 얻는 수익이 아닌, 그야말로 작품의 스케일만큼이나 커다란 양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도박하려는 마음과는 다소 다르니까요. 아무 근거 없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글 솜씨라는 자원과 시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 존재하죠. 단, 헨리 씨가 그걸 완성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자신에게 돈을 벌어다 주었던 작품활동을 전혀 못한 채 근 3년간을 매달려야 해요. 헨리 씨는 이 작업에 착수하는 게 좋을까요? 포기하는 것이 좋을까요?

저희는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헨리 씨가 저희의 도움을 얻어 이 작업을 포기하게 될 거라고 여기시나요? 사실, 저희는 헨리 씨에게 모험을 해보라고 권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교수님의 연구결과에 놀란 다른 분들도 많은 실험을 해봤는데, 놀랍게도 집단토론을 거친 뒤의 의사 결정은 한 개인의 그것보다 훨씬 모험적일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왔답니다. 교수님은 이 현상을 이론적으로는 극화 현상이라고 설명해 주셨어요. 즉 집단의 결정은 개인보다 훨씬 보수적이거나 훨씬 모험적이거나, 여하튼 점점 극단적인 쪽으로 결론을 내게 된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파악되는 점은 바로 사람들이 집단적인 토의를 통해 자기들이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을 더욱 굳힌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개는 사람수가 우세한 쪽의 의견이 대세, 내지는 결론이 되는 거구요.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존재하는데 우선 정보의 영향, 그리고 규범적 영향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정보의 영향이란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할 근거를 토론 중에 많이 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찬성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은 측에선 자신들의 의견에 점점 확신을 갖게 되겠죠? 두 번째로는 규범적 영향. 일단 대세가 정해지면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밋밋한 의견을 내놓아서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보다 좀더 강도 있는 의견을 내놓아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결론은 점점 극단적으로 나게 되겠죠.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를 설득시켜 결론을 바꾸도록 기대하는 것은, 그래서 이론상 조금은 어려운 일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