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여 유희강 서거 30주년 기념 특별전이 고향 인천에서 열린다. 또 대규모 전시와 심포지엄을 통해 유희강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이 낳은 국보급 서예가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1911~1976)을 2006년 인천대표인물로 선정하고 오는 11월에 다양한 관련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에 검여 선생 30주기를 맞아 학술심포지엄과 대규모 전시를 개최,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검여 유희강 서거 30주년 기념 특별전은 오는 11월6일부터 16일까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 중앙전시실에 마련된다. 심포지엄은 11월11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될 계획이다.
전시기획에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의 이동국 학예사와 한국학대학원의 이완우 교수가 참여한다. 현재는 막바지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우현 고유섭을 시작으로 2회째를 맞는 인천대표인물조명사업을 위해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지워진 그의 생애를 복원하는 중책은 인천문화재단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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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유학 시절의 검여(좌)와 중년의 좌수서예 모습(우). 모던한 풍모가 인상적이다. | |
검여가 인천 출신이었던 만큼 공공 문화재단으로서 책임을 다하자는 취지다. 두 번째 인물로 검여 유희강을 지목한 것은 올 초다. 연속 2회를 미술인으로 선정한 데에 다소 부담도 있었지만 마침 검여의 30주기와 때가 일치했고 많은 준비가 필요한 만큼 공공 문화재단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재단의 설명이다.
청년시절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동서고금의 예술적 정수를 섭취했던 검여의 예술세계는 서구 추상회화로부터 정통 서예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그러나 그간 이렇다 할 조명 작업이 뜸했던 게 사실이다. 검여 유희강은 한국 근대 서예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불행한 예술가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한국사회의 다른 많은 분야들이 그랬듯 한국미술도 서양미술에 점차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한자문화권 고유의 예술장르인 서예는 더욱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일반에 서예가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정도에 불과할 만큼 오늘날의 서예는 변두리 장르가 되어버렸다.
검여 유희강은 전통예술의 전반적 퇴조와 함께 우리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져갔던 것이다. 하지만 기억의 정도와 인기 여부를 떠나 검여의 생애와 예술세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검여의 붓글씨는 ‘칼날 같다’는 의미의 그 아호와도 통한다. 다양한 서체들을 두루 능숙하게 구사할 뿐 아니라 자로 잰 듯 당차게 뻗어나간 호와 획은 이미 정평이 난 것이다.
아울러 그는 동서를 넘나들며 고금을 아울렀던 미학적 천재였다. 청년 유희강은 상하이 유학 시절, 서양미술에 심취하여 여러 편의 추상회화 작품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한국화에도 서양회화 기법들을 도입하여 그 현대화를 앞장 서 일구었던 선구자다.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러한 면모들이 그간 다양하게 조명되지 못했던 것은 한국문화예술계의 큰 불행이자 인천 지역사회의 손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그가 개항도시 인천이 낳은 대표적 모던보이이자 서양예술의 정수에 두루 심취했던 정신의 모험가란 사실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영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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