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정리함

때늦은 성장통이라도 뭐 어떠랴

서나노야 2006. 9. 21. 11:12
때늦은 성장통이라도 뭐 어떠랴 |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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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낄 때가 언제더라... 회사 아르바이트생과 나이차가 이제 10살 이상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칼슘제 먹고 런닝머신에서 죽어라 뛰고 있을 때, 요새 뜨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 할 때(얘들은 도대체 누구여?), 뉴스에서 제일 먼저 연예면을 뒤적거릴 때. 

 

물론 이런 것도 맞긴 하다. 하지만 내가 진짜 나이를 먹었다,라고 느낄 때는 할 말과 안 할말을 조금은 가릴 줄 알게 됐을 때,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주억거릴 때, 뭔가 시작하는 데 많은 결심과 다짐이 필요할 때, '비교'에 대한 경우의 수들이 점점 늘어남을 깨달았을 때더라(일반적으로 '비교'의 함정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살 한살 삶의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약간의 변별력과 조금은 유해진 성격 정도가 그나마 다행인건가? 이것도 성장이라면 성장일 테지만, 자꾸 쓴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나이가 들수록 퇴행은 쉬워도 성장은 어려운 법, 갈수록 '성장'이란 단어가 점점 생경하게 느껴진다.

 

성장소설을 읽을 때 가슴 한 켠이 뻐근해 지는 건 그래서일까?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늘 '...Ing'다. 따분하고 힘겹고 구질구질한 일상 속에서도 그들은 열심히 자란다.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좌절해도 그들은 조금씩 커나간다. 한 뼘씩 그렇게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이미 다 자라(어쨌든 나이는 웬만큼 먹었으니), 모든 것에 심드렁해진 나를 쿡쿡 찌른다. "너, 지금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니?" 

     

그래서 책을 읽으며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을 탐색하는 일은 정체 일로를 겪고 있는 나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나의 17살이 그처럼 대담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속시원히 일탈 한 번 못한 것에 대해 분한 감정마저 들게 했던 <69:sixty nine>, 꽉짜인 범생이로 살았던 학창시절(아이고~ 무슨 부귀 영화를 보겠다고!)을 후회하게 만들었던 <레벌루션 NO.3>, 달콤 쌉싸름한 성장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새의 선물> 등등. 이렇게 반짝거리는 성장소설들은 고만고만한 조언들보다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더 큰 힘이 된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복잡하다. 어렸을 때 그리던 '어른'과는 전혀 다른 어른이 된 나는 지금도 암중 모색상태이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나날 속에서 태평스럽게 '영원'을 꿈꿀 만한 여유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건강하다. 전과 다름없이 자주 넘어지지만, 넘어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아직은 웃을 수 있다. 살아가면 살아가는 만큼, 다른 것은 차지하고라도 사람은 대담해지는 모양이다. 부디 여러분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 <검은 마법과 쿠페빵>

 

퇴행하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 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때늦은 성장통이라도 뭐 어떠랴. 아무런 감동 없는, 무덤덤한 일상보다는 차라리 아프더라도 넘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게 낫지 않을까? 말도 토실토실 살찐다는 이 가을에 성장 소설들을 읽으며 자신의 성장 정도를 체크해보자. 읽고 나서 마음 한구석이 괜시리 저릿하다면 당신의 성장은 아직도 '...Ing'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