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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 배종하 국제농업국장 | 지난 6~9일까지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3차 협상 농업분과장으로 다녀온 결과를 국민들에게 보고드리겠습니다.
미국 서해안 제일 북쪽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항구 도시, 보잉항공사와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본거지를 둔 도시, 멕 라이언과 톰 행크스가 나오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이란 영화로 유명해진 도시가 시애틀입니다. 220여 명의 정부대표단, 50명 가까운 기자단, 그리고 FTA에 반대하러 간 원정시위단 이렇게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며칠 동안 시애틀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매우 보수적으로 관세양허안 작성 이번 3차 협상은 지난달 15일 교환된 관세양허안(각 품목별 관세인하계획안)을 놓고 처음으로 개별 품목에 관한 얘기들을 주고받았습니다.
농산물에 있어 미국은 절대적 우위에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관세를 완전히 없앤다는 의욕적인 목표로 협상에 임했습니다. 반면 우리는 관세가 없어질 경우 국내 농업에 상당한 영향이 있기 때문에 관세철폐로 피해가 예상되는 민감한 품목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모든 품목의 관세를 철폐하겠다는 양허안을 가져왔고, 우리나라는 대부분 주요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철폐가 어렵다는 내용의 양허안을 제시했습니다.
양허안은 모든 농산물을 △관세를 즉시 철폐할 수 있는 품목 △일정 기간에 걸쳐서 철폐할 수 있는 품목 △관세 철폐가 어려운 품목 등으로 나누어 만듭니다.
미국은 미국 농산물 관세철폐기간을 5개 그룹(즉시 철폐, 2년, 5년, 7년, 10년 철폐)으로 나눠 우리에게 보내왔습니다. 우리가 제시한 관세철폐기간도 5개 그룹(즉시철폐, 5년, 10년, 15년, 기타 그룹)으로 나눠지지만 관세철폐기간이 미국보다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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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김종훈 한국 수석대표가 지난 7일 오후(한국시간) 숙소인 웨스틴 호텔에서한미 FTA 각 분과별 대표들과 함께 협상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또 기타 그룹은 사실상 관세철폐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여기에 대부분의 주요 품목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제시한 양허안대로 협상이 종결된다면 FTA를 체결하더라도 우리 농업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습니다.
FTA를 통해 자유무역을 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모든 품목을 제외시키는 것이 말이 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FTA를 하면서 많은 부분을 자유화하지 않겠다는 것은 FTA 정신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협상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집요한 공격이 예상되는데 미리부터 우리의 속을 다 내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협상의 최종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일단 처음에는 최대한 보수적 입장으로 작성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협상에서 양허안은 마지막까지 여러 차례 고쳐집니다. 따라서 최초 양허안이 그대로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며, 다분히 전략적으로 작성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른 FTA를 보더라도 최초양허안과 최종협상결과을 비교해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농산물을 보수적으로 만든 것처럼 미국은 공산품과 섬유에서 많은 품목을 관세철폐에서 일단 제외시켰는데 이것도 역시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민감하지 않은 품목부터 먼저 논의 우리는 미국 측에게 한국의 농업은 매우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 많아 협상 과정에 이런 민감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협상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미국측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세를 없애더라도 부담이 적고 영향이 거의 없는 품목부터 먼저 논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민감한 품목부터 시작하면 협상 자체가 어렵고 난관에 부딪쳐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품목이 민감하지 않은 품목일까요. △미국이 한국에 수출을 많이 하고 있는데 국내 생산은 거의 없는 품목 △가공식품의 원료로 쓰이거나 축산사료의 원료가 되는 품목 △관세가 아주 낮아 보호 효과가 없는 품목 등입니다.
실제로 이런 품목들은 이미 많이 수입이 되고 있고, 국내 생산이 적어 수입으로 대부분 수요를 충당하고 있으므로 우리 농업생산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더러 민감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양허안 개선과 농산물세이프가드 주고 받기 이번에 우리는 주로 미국측의 요구를 많이 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을 판단할 예정입니다.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과 수용이 어려운 부분을 잘 판단해야 하고 또 앞으로 여러 차례 협상이 있고 양허안 수정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만큼 우리가 미국측에 요구할 사항도 제시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미국에 농산물을 많이 수출하지 않고, 미국이 이미 모든 품목의 관세를 철폐하겠다고 한 마당에 양허안과 관련해서 미국에게 요구할 사항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동안 미국이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온 농산물 세이프가드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했습니다. 농산물 수입 증가가 우려되는 우리에게 세이프가드 제도는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이프가드에 대해 강하게 얘기했고, 이에 대해 미국측은 우리가 양허안을 개선할 경우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양허안을 어느 정도 개선할 지, 어떤 형태의 세이프가드 제도가 될 지 등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단 양측이 이런 원칙에 의견을 같이 했기 때문에 4차 협상 또는 그 이전에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런 결정을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실무안을 만들더라도 관련 부처나 부서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고, 또 이해관계자들의 의견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양허안 수정 범위와 수준은 세이프가드 제도 관련 논의의 진전 정도, 민감 품목에 대한 고려 등을 감안해 결정될 것이며, 농업 이외 다른 분과와도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앞으로의 전망 앞으로 4차, 5차 협상으로 갈수록 어려운 부분들이 논의될 것입니다. 다른 분과와 달리 농업은 미국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달려들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쟁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미국은 ‘어떤 품목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우리는 '우리 농업의 민감성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협상이란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들 수도 있고, 될 듯 하다가도 작은 일이나 뜻밖의 상황으로 결렬되기도 합니다.
아직 민감한 부분은 손도 대지 않았으니 갈 길이 멉니다. 중요한 결단의 순간들이 우리 앞에 남아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머리를 맞대야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왕 시작한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내야 한다는 목표는 분명합니다만 서두르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농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잊은 적이 없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한다는 협상단의 각오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시애틀 공항의 기념품 가게에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을 새긴 찻잔, 티셔츠를 잔뜩 진열해 놓고 있었는데 기념으로 하나 살까 하다가 발길을 돌렸습니다. 더 이상 잠 못 이루는 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