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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의 유례

서나노야 2006. 10. 4. 18:16
차례상의 유례
2006년 09월 27일 | 글 | 장경애 기자ㆍ |
 
차례의 유래와 변천

원시시대 사람들은 자연 현상과 천재 지변의 발생을 경이와 공포의 눈으로 봤으며 인간이 생존할 수 있음을 자연에게 감사했다. 따라서 만물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 신의 가호로 재앙이 없는 안락한 생활을 기원했는데 이것이 제사의 기원이다.

제사는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일정한 격식을 갖추었는데 이것이 제례다. 중국에서는 이미 요, 순시대에 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다. 특히 동양에서는 조상에 대한 제례가 하, 은시대를 거처 주나라 시절에 확고하게 갖춰졌다.

우리 민족도 아득한 고대부터 하늘을 공경해 제천의식을 거행했다. 농경에 종사하게 된 뒤로는 우순풍조(雨順風調)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의식이 성행하게 됐다. 예를 들어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이 모두 제천의식이었다.

국가의 형태가 완비된 뒤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그리고 점점 일반 가정에서도 조상에 대한 제사를 정성껏 받들었다. 이런 제례는 모두 유교의 가르침에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주자의 ‘가례(家禮)’를 기본으로 삼아 제사를 지냈다.



차(茶)를 올리는 예에서 유래

평소에 쓰는 그릇과 달리 제기에 받침이 있는 것은 조상을 높이 받든다는 의미가 있다.
차례라는 말을 예서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단지 관습적으로 민속명절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례를 차례라고 한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 주자의 ‘가례’에 보면 조상의 위패 앞에 찻잔(茶盞)과 술잔을 놓고 주인은 술을 따라 올리고 주부는 차를 따라 올린다고 했다. 그리고 매달 보름에는 술잔을 차리지 않고 찻잔만을 차린다고 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중국에서 가장 간단한 제례라고 할 수 있는 보름의 사당참배에는 술을 쓰지 않고 차만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간단한 제례를 ‘차(茶)를 올리는 예(禮)’라는 뜻에서 ‘차례’라고 말했으리라 짐작된다.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을 때는 정월 초하루, 동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예를 드렸고 민속명절에도 그 명절에 먹는 계절특식을 예를 갖추어 받들어 올렸다.

미루어 볼 때 원래의 차례는 설, 동지, 매달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각종 명절에 지내는 것이었다. 율곡선생은 차례 지내는 날로 정월 대보름, 삼월 삼짇날,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추석, 구월 구일, 섣달 등을 예시했다. 따라서 사당이 있을 때는 1년간에 차례를 지내는 횟수가 30여회에 이르렀다.



설, 한식, 추석에 차례 지내는 뜻

사당을 모시는 가정이 없어지면서 차례는 민속명절에만 지내게 됐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도 예전과 달리 설날, 한식, 추석의 세 번만 남아있게 됐다.

사당이 없어졌으니까 차례가 모두 없어졌을 법한데 설날, 한식, 추석의 차례가 그대로 행해지는 데는 상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 다른 명절과 달리 설날은 새해 인사로 어른께 세배를 드려야 하는데 돌아가신 조상에게 어찌 세배를 드리지 않겠는가라는 효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식은 언 땅이 녹으며 초목의 생장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겨울 동안 눈사태나 없었는지 언 땅이 녹으면서 산소가 상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식의 성묘는 효성스런 자손으로서 꼭 해야할 행사이다. 추석은 장마가 지나가고 초목의 생장이 멈추는 계절이다.

장마에 산사태는 안 났는지, 많이 자란 나뭇가지나 뿌리가 산소를 침범하지는 않았는지를 궁금해하면서 벌초도 하고 예를 올려야 하는 날이다.


<장경애의 '추석 차례상 - 생활지혜 듬뿍 담긴 영양식탁' 기사 발췌 및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