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정리함

사랑과 연애의 경험을 소홀히 취급하지 말라

서나노야 2006. 10. 2. 08:09

드라마에서 어떤 전형이 하나 있다. 여자주인공을 ‘일이냐, 사랑(결혼)이냐’ 하는 기로에 서있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사는, 더구나 여성으로서는 일과 결혼생활을 병행해나가는 일에 분명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이제 20대의 젊은이들이라면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사랑과 연애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꿀 필요가 있다. 사회는 점점 달라지고 있고 달라져가고 있다. 사랑과 연애의 경험을 제대로 이용하는 사회생활일 필요가 있다.


일과 사랑은 한 세트다

2002년 월드컵의 이후 히딩크의 리더십은 그 어떤 리더십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그의 선수 장악 능력이나 코칭 스타일, 축구협회와의 관계 등은 우리나라 경제, 문화, 정치, 사회 각 분야에 폭넓게 적용되어 왔다. 축구감독 한 명의 리더십이 그렇게 사회 각 분야에 포괄적으로 응용되고 적용된 예는 그것이 그렇게 큰 반향의 리더십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사랑과 연애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게 되는 경험은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역사로 치부할 수 있지만 실은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사실 가장 많은 시금석을 제공하고 있다. 사랑이나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도 잘한다고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사랑이나 연애만큼 직설적이고 명명백백한 대인관계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사랑이나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대인관계를 잘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니 일도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일과 사랑은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 한 마리를 잡으면 다른 한 마리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는 보너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라. 물론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사랑을 할 때 가슴과 머리를 동시에 이용해야 한다. 가슴만 쿵쾅거리는 연애란 모름지기 황순원의 소나기나 TV 드라마 속 선남선녀들의 사랑법이지 실생활에서는 흔한 것이 아니다. 가슴은 뜨겁게 불타오르되 머리로는 시시각각 상대방과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것, 이것이 현실의 연애법이다.


밀고 당기는 기술을 모르는 K

“뭐야 입사한지가 언젠데 이런 것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거야?”

여사원들의 눈이 한순간 K에게 몰렸다가 다시금 썰물처럼 제자리로 빠져나간다. 물론 속으로는 모두들 또 노처녀 히스테리가 시작됐구나 하면서 혀를 차고 있는 중이다.


“다들 그래. 자신이 맡은 일은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면 얼마나 좋아. 언제까지 거기서 다 사람들 시다 노릇이나 하고 있을 거야?”


저 소리가 왜 안 나오나 했다. 여성의 비율이 높은 의류 업체의 중간 간부인 K는 이제 서른을 갓 넘긴 나이임에도 노처녀 히스테리가 극심하다고 여직원들은 수군댄다. 저러니 남자가 없지, 하는 식이다. K는 얼굴이 크게 빠지는 것도 아니고 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재원이지만 이상하게 제대로 된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이즈음 K와 입사동기인 팀장이 냉랭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K를 데리고 얼른 사무실을 빠져 나온다.


“요즘 왜 그래?”

“내가 뭘?”

“그렇잖아.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K와 팀장은 식사를 마치고 커피숍에 나란히 앉았다.


“저번에 소개시켜준 우리 사촌형이랑은 어떻게 됐어?”

“사람은 괜찮아 보이는데 너무 힘이 없는 것 같아. 남자라면 여자를 확 휘어잡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

“너 말 한번 잘했다. 당신이 어디 확 휘어 잡힐 스타일이야? 상대방을 몰아 부치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순서 아냐? 연애도 그렇고 일도 그래. 확 몰아붙여야 하는 때가 있는가하면 한 발짝 물러서야 할 때도 있는 거라구.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나가면 상대방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


대인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이 안에 있다

사실 모든 관계에는 힘의 균형이란 것이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또 한쪽은 일방적으로 몰리는 관계는 균형이 깨진 관계이다. 상명하복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관계는 근대적인 것이며, 군대와 같은 특수한 조직이 아니면 이제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이러한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양한다.


연애나 사랑에서도 이러한 점은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경험을 돌아보며 잘 생각해보자. 자신의 연애가 실패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한쪽이 너무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었거나 다른 한쪽이 너무 받기만 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에는 보통 총량이 있는 것이어서 주고받는 것이 황금 균형이 필요하다. 그것이 만약 한 사람에게 오랜 시간 쏠려 있는 경우에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사랑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휘어잡기보다는 서로 동등하게 사랑을 주고받아야 한다. 여자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거나 남자라고 해서 사랑의 표현을 등한시한다면 성공적인 연애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자신이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주고받는 것에 인색해져서는 안 된다. 또한 서로에게 보상받으려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보상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너무 자신이 받고 있다고 여기는 순간에는 한발 다가서서 사랑을 주려고 해야 하고, 넘치게 사랑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한발 뒤로 물러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랑에서 감정과 함께 이성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힘의 균형도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직장에서도 직위를 부르는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동등하게 호칭을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이것은 계급이 주는 상하 관계를 없애는 대신 서로가 같은 위치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면 발언을 함에 있어 훨씬 창의적일 수 있다. 그만큼 부담을 갖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연애에서 비롯되는 많은 경험은 대인관계,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실패했다면 그 이유를, 자신이 기분 좋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면 또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 두자. 그리고 그것을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대인관계에 활용해보도록 하자.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관계를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열정의 바통을 이어 나간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속이 뜨거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행복한 일이다. 꼭 연인 사이가 아니라도 서로의 열정을 나눌 수 있는 가슴 뜨거운 친구라 해도 문제없다.


“너 나 때문에 행복하지 않아?”

연인이나 친구가 이렇게 묻는다면 그 자리에서는 싱거운 농담이군, 하고 웃고 말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들 덕분에 꽤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가슴에 열정을 품은 사람은 그 옆사람에게도 그 열정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정을 전염받는 자와 전염시키는 자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전염된다. 만약 자신이 언제든 열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열정을 가진 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염될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상대방의 열정을 받아들일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면 오랜 세월동안 열정을 가진 자와 함께 산다고 해도 열정에 감염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열정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먼저 열정이 가득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도록 하자. 열정이 있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과 흡사한 특징을 가진다. 대부분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지 않는다.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일만에 국한하여 미친 듯이 파고든다. 또한 쉽사리 주변의 이야기에 현혹되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 다른 일에 눈 돌리지 않는 것이다.


열정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삶은 그 양은 같을 지라도 질적인 면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똑같은 업무를 할 때도 열정을 가진 자의 성과물이 훨씬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장소에서 놀이를 할 때도 열정을 가진 자가 훨씬 더 많은 시간 앞자리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이제 사랑과 연애의 뜨거움을 고스란히 일에 대한 열정으로 옮아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