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정리함

별걸 다 챙기는 남자, 어때?

서나노야 2006. 10. 1. 09:59
그 옛날 노영심 언니는 노래했었다. 나를 처음 만난 날이 무슨 요일인지, 내가 번호 8자를 적을 때 어떤 방향으로 돌리는 지, 지하철 4호선과 1호선에서 내 표정이 어떻게 바뀌는 지,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노랫말처럼 그는 피곤하지만 매력 있는 남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무관심해도 문제지만 너무 곰살맞은 남자도 별로이지 않을까? 별걸 다 기억하고, 별걸 다 챙기는 남자, 장단점은 뭘까?

이 사람은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했던 귀고리나 구두까지 다 기억해요. 벌써 3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죠. 기념일요? 각종 굵직굵직한 날들은 기본이고, 14일은 다 챙겨요. 첫키스한 지 100일도 챙겼었구, 처음 우리 집에 놀러 간 날까지 기억해서 챙기구 뭐 365일 중 반 이상은 기념일이라고 봐야죠. 기억력은 어찌나 좋은 지 우리 부모님이랑 동생들 생일도 다 기억하고, 동생 시험날짜까지 챙겨서 초콜릿을 사주더군요. 자상하고 세심한 면이 좋긴 하지만 무던한 제 성격상 조금 피곤할 때도 많아요. (김미영, 25세)
남자의 무관심에 고개 숙였던 여자, 기념일 한 번 못 챙기고 세월만 보낸 여자, 자상한 남자의 사랑에 목말랐던 여자, 그녀들에게 세심한 남자는 하늘에서 떨어진 보석과도 같다.
사랑하는 줄 알면서도 사랑의 표현을 기다리는 여자에게 남자의 자상한 관심과 세세한 기억, 보살핌들은 감지덕지다. 사랑 받는다는 기분을 체감하게 하고, 오직 이 남자 앞에서만은 최고의 여자로 군림할 수 있다.
장점은 많다. 매번 데이트 장소와 방법 선택에 고민하던 연인들. 기념일, 이벤트를 잘 챙기는 남자친구가 있다면 고민은 말끔히 해결된다. 이뿐이랴. 잊을만하면 그가 떠올려주는 처음의 설렘이 두 사람 사이의 권태를 날려버릴 수 있다.
우쭐한 기분을 누릴 수 있는 점도 좋다. 누가 보기에도 그 남자가 얼마나 사랑하는 지 재 볼 수 있는 척도가 되며, 여자 스스로 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헤어지더라도 왠지 이 사람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여자란 느낌이 들어 매순간 어깨가 으쓱거릴 지도 모른다.
별걸 다 챙기는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 받는 기쁨을 알게 한다. 대부분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법칙에 따라 서서히 변해가는 남자를 보며 슬퍼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처음 만난 날 조차 잊어버리기 일쑤고, 과연 이 남자가 자기 애인이나 제대로 알고 있는 지 궁금할 때도 많았던 그녀들. 세심한 남자의 관심이 얼마나 그립겠는가!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이런 남자들에게도 단점은 있다. 아니, 별로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의 삐딱한 시선이 있다.
사사롭게 온갖 기념일 챙기는 것이 처음에야 즐거울 것 같지만 매번 비슷한 패턴의 이벤트는 여자를 질리게 하고, 부담스럽게 한다. 오히려 여자쪽에서 기념일을 잊게 되면 왠지 그 보다 자신이 덜 사랑하는 것 같고 괜스레 미안한 기분이 든다.
때로는 의심도 간다. 혹시 이 남자가 습관인 건 아닐까? 만나는 여자마다 이 정도 챙김은 기본은 아닐까? 천성적으로 세심하다 보니 아무 사이도 아닌 여자들에게 친절과 관심을 베푸는 건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의심은 확대된다. 의심이 커지다 보면 남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여자에겐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자잘한 관심도 그저 기억력이 좋아서 일 것 같고, 기념일 잘 챙기는 건 옛날에 다 해봐서 잘 아는 것 같고, 연락 자주 하는 것도 왠지 집착처럼 느껴질 지 모른다.
쿨하다고 자처하는 여자들에게 곰살맞은 남자의 행동은 닭살스럽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물론 자상한 남자는 매력적이지만 때로 관심이 지나치면 집착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무덤덤하면서도 한 번씩 비춰지는 사랑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별걸 다 챙기는 남자는 왜?
그는 기억력이 엄청나게 좋은 남자일 것이다. 그는 이벤트를 열길 좋아하는 남자일 것이다. 그는 넘치는 애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남자일 것이다. 그는 습관처럼 여자에게 잘 하는 남자일 것이다. 어떤 해석이라도 좋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무뚝뚝하든 세심하든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모든 걸 해 주고 싶은 것이 남자 마음이다.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랑을 잘 받아들일 줄 아는 것도 여자의 센스다. 챙겨줄 때 잘 받자. 이런 남자들이 어디 흔하겠는가.
사진 출처/ 영화 <신데렐라 스토리>